[치코미디어] 비트코인 채굴은 전력 낭비에 불과할까?
문명의 척도로 접근해보는 비트코인
2021/04/26
김주호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PoW, Proof of Work) 방식은 에너지 소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업 증명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트코인이 정말 에너지 소모적인지 알아보고 그 내면에 숨겨진,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것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작업과 에너지’에 대한 고찰
‘일(혹은 작업)’은 에너지의 변화량을 뜻하고 에너지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프랑스 과학자 가스파드 코리올리(Gaspard Coriolis)는 에너지를 ‘끝낸 일(work done)’이라고 정의한다.
식물을 채집하여 생존을 하였던 원시시대에서는 경제활동의 에너지가 전적으로 사람의 노동력에서 나왔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는 모두 사람이 먹는 음식에서 나왔다. 약 100만 년 전, 우연히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된 후로 사람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급격히 커지게 되었다. 동물 고기를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는 우리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는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 크게 늘어났다. 가축이 먹을 것이 충분하다는 가정하에 가축은 인력을 대신할 수 있다. 가축이 충분히 먹고 일을 하기 위해, 즉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추가적인 먹이가 필요하지만 이미 인류는 그 정도를 감당하고도 남을 생활수준이 충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축에게 노동력을 이전시킬 수 있었고 한정된 시간 안에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었다. 우리는 나아가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세웠다. 기계는 사람을 대신해, 가축을 대신해 일을 했고 이를 위해선 석탄, 가스, 석유, 원자력 등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결국 기계든 생물이든 일을 하기 위해선 모두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우리의 생활의 모든 것은 일과 에너지, 그리고 에너지의 가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식수를 생산하기 위해선 물을 맑게 만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화물을 운반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며, 제품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며,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냉장고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장 경제에서는 상품의 단위 원가는 이러한 에너지 비용을 모두 반영한다. 결국 돈이 돌아서 경제가 도는 것이 아니라 일과 에너지가 발생해서 경제가 도는 것이다. 가격은 곧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총 에너지 소비량이며 시장에서는 사람들은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모든 상품의 생산과 제조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화폐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에 또 구매하는 데에 필요함과 동시에 주조시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저장된 에너지원이다.
2008년 10월 31일,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되었다. 블록체인의 첫 증명 방식은 작업 증명방식으로 블록체인의 최초의 활용 사례라고 볼 수 있는 비트코인이 위와 같은 작업 증명 방식을 따른다. 작업 증명은 97년 아담 백(Adam Back)이 스팸 메일에 의한 서비스 거부 공격(DOS attack)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한 해시 캐시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작업 증명 채굴은 한마디로, 전자기기(예: ASIC)를 사용하여 전기 에너지를 비트코인(블록 생성에 대한 보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더 자세히는 블록 생성자(채굴자 또는 검증자)들이 컴퓨터 연산을 통해 블록체인의 블록 헤더에 제시된 난이도 조건을 만족하는 블록 해시값을 경쟁을 통해 찾으면 새로운 블록을 추가하는 작업이 완료되고 보상을 받는 구조이다. 이때 채굴자는 블록 헤더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에너지(형식 ASIC 및 전력)를 소비하고 이를 증명한다. 비트코인 메커니즘에서는 전력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해시 값을 생산(일)할 수 있다.
작업 증명 방식을 사용할 경우, 51%의 해시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 특히 해시 파워를 갖는 것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51% 해시 공격이 이론적으로 매우 어려워 당장은 작업 증명 방식은 안전하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에 채굴장이 집중 포진하며 해시 파워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작업 증명은 곧 에너지를 통한 증명과도 같아서 물리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작업 증명은 물리적인 것이다. 비트코인은 에너지로 주조된 데이터 금, 곧 상품과도 같다. 작업으로 증명하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매우 비싸다’는 말이 맞지만, 이는 비트코인이 가진 결점이 아니라 하나의 특성이다. 비트코인은 두꺼운 물리적 담장을 통해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암호화폐는 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만질 수 있는 테두리로는 결코 내적 가치를 보호할 수 없다. 변조될 수 없는 비트코인의 장부는 집중된 해시 파워로부터 나오며 해시 파워는 곧 비트코인의 가치를 보호하는 테두리가 된다. 값비싸고 투명한 이 메커니즘은 테두리를 허물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고찰
암호화폐 비관론자들은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방식은 철저히 소모적이며 몇 년 안에 비트코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의 데이터 과학자 Alex de Vries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에너지 소모적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주장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비판의 중심에는 그가 주장하는 에너지 소비 계산 공식에 있다. 에너지 소비에 관해 그가 이용한 지표는 ‘단일 거래의 평균 전력 소비량’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계산법이 아니며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것이다. 그 원인은 아래와 같다 :
- 에너지 소비는 블록 단위로 이뤄지는데 블록당 거래가 얼마나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더 많은 거래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결코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 단일 비트코인 거래의 경제밀도(혹은 경제적 가치, economic density)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점차 하나의 결제 네트워크가 되고, 각 단위의 에너지로부터 보호받는 경제적 가치도 배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단일 거래의 평균 에너지 소비는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따지기엔 역부족이므로 경제 역사상의 안전성에 따라 정의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는 이미 채굴된 비트코인을 보호한다. 비트코인 1개는 모든 블록을 파낼 때 사용하는 에너지를 축적한다. 한 연구원(LaurentMT)은 실증 연구를 통해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할 것이며, 커지는 원가비용은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되는 총 가치의 더 큰 증가로 상쇄될 것이라고 증명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 소비의 ROI(투자수익률)를 측정하기 위한 정확한 KPI(핵심성과지표)가 무엇인지 알 수있다. 아래 그래프를 통해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방식의 원가 변화 추세를 볼 수 있다. ASIC의 효율의 증가폭이 둔화되고 있다. 효율성 증가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해시 파워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채굴 난이도를 보여주는 그래프 (출처 : UCSD.edu)
해시 레이트 단위 비용 (출처 : bloomberg.com)
채굴장의 총 원가는 ASIC 설비의 초기 조달 원가(자본지출)에서 지속적인 에너지 지출(운영원가)로 바뀐다. 채굴자는 최소한의 한계비용으로 추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력 가격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곳을 찾을 것이고, 이를 통해 결국 더 효율적인 전력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비트코인의 채굴 원가는 초과 전력의 최저 가치가 된다.
이와 같은 일종의 아비트레이지 현상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슬란드의 알루미늄 수출이 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알루미늄 제련 산업에 있어 아이슬란드는 최적의 장소로 뽑혔고 알루미늄 제련은 이미 아이슬란드의 최대 경제 창출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는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알루미늄의 비정상적인 에너지 소비를 둘러싼 우려는 1979년부터 4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알코아를 비롯한 세계 유명 알루미늄 기업들이 몰려 들면서 더 효율적인 방식이 끊임없이 연구되었다. 알루미늄 제조업이 성장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알루미늄 1㎏당 전력 소모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1900년부터 2000년까지 알루미늄 전력 소비량과 효율성 (출처 : energy.gov)
암호화폐 전문 분석 업체 코인메트릭스(Coinmetrics)의 공동 창업자 닉카터(Nic Carter)는 “전 세계의 에너지 네트워크가 잉여 자산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자산이 탄생할 수 있게 한다”라고 말했다. 3D로 출력된 세계지도를 상상해 보면 에너지 가격이 낮은 곳은 지대가 낮고, 에너지가 비싼 곳은 높다. 그리고 비트코인 채굴은 이와 같은 지도 위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비트코인은 모든 전력의 마지막 구매자인 만큼 활용되지 않는 에너지를 둘러싼 새로운 활용방안을 개발하도록 독려하는 플랫폼을 만들 것이다.
언체인드캐피탈(Unchained Capital)의 공동창립자 겸 최고보안책임자(CSO)인 다루프 반잘(Dhruv Bansal)은 “작업 증명 방식의 전력 당 한계수익은 ‘전력망에 1차 전력의 한계수익을 팔 때’이며, 이는 즉 작업증명 방식의 '프리미엄'을 0으로 낮춘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는 이 균형점을 '나카모토 사토시’점이라고 칭한다. 작업 증명의 전력 소비가 전세계의 1~10%에 달할 때 이 균형점에 도달한다”라고 말했다.
‘상대적 원가’에 대한 고찰
에너지는 그 형태가 바뀔 뿐 결코 소멸되거나 형성되지 않으며 현재의 에너지가 다른 어떠한 에너지로 전환될 때에 그 에너지의 형태만이 전환될 뿐 그 과정 전과 후의 에너지 총합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일정하다. 이것을 에너지의 보존 법칙이라 한다. 즉 일정량의 열이 소비가 되면 소비된 열에너지는 다른 어떠한 모습으로 소비된 열의 에너지만큼의 에너지를 갖는다. 에너지의 어떤 용도가 더 많거나 덜 낭비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모든 사용자가 같은 가격을 지불해야만 전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이자 비트코인 서적 'The Bitcoin Standard'의 저자 사이페딘 아모스(Saifedean Ammous)는 “사람들이 전기 요금을 낼 만한 용도를 발견하면 전기는 낭비되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경우, 전력을 소비한 사람들은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았기 때문에 낭비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비트코인으로 인한 전력 소모는 기존의 법정화폐가 소비하는 에너지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다. 심지어 법정화폐 시스템은 중앙은행의 화폐 주조 인프라뿐만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정치도 필요로 한다. 아래의 표는 금의 채굴과 재활용, 종이 화폐 조폐와 은행 시스템, 정부 비용과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연간 비용과 에너지 소비량을 보여준다.
카르다셰프의 I 단계 문명
러시아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셰프(Kardeshev)는 문명의 기술 발전을 에너지 이용 전도에 따라 구분하였다. 이는 I, II, III 단계로 구분되며 각 단계의 문명은 고유한 형태의 복사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제 I 단계는 행성 에너지를 이용하는 문명을 뜻한다. 이들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은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는데 이 양은 약 10페타와트에 달한다. 나사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 인류는 약 0.76단계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21세기 말이나 22세기 초에 I단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는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 소모량의 1000배를 더 사용해야 함을 뜻한다.
카르다셰프의 척도(Kardeshev scale)는 에너지 이용 전도에 따라 인류가 식민지화 시킬 수 있는 수준을 구분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어)
어쩌면 인류는 비트코인의 채굴을 통해 카르다셰프 문명 I 단계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도 있다. 비트코인 채굴의 보상 제도(채굴에 동기가 되는)는 인류가 I형 문명을 실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200년에서 수십 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론적으로 I 단계에 이르면 에너지 소비 증가를 억제할 필요가 없어져 인류 전체는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에너지 소비량과 1인당 국내 총생산의 관계
해당 글은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막대한 자원 소모를 대변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비트코인 = 자원 소모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합리적인 의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비트코인이 갖는 의미가 비실물 경제를 쫓은 어리석은 이들의 자원 낭비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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