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거리·영웅·예술
롯데 뮤지엄
1980년대 초 뉴욕의 길거리 낙서를 하면서 등장한 장 미쉘 바스키아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다닌 경험 외에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천재 화가이다. 생을 마감하기끼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르고 앤디워홀의 단짝 친구로서 자리매김하며 두 거장이 교류하며 작품들을 남겼다.
거리의 이단아, 장 미쉘 바스키아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네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그려나가며,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누구보다 긴 여운을 남겼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8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 출신의 아버지와 푸레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스키아는 부모님 덕분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언어와 수식들이 도식화되어 나왔다.
또한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선물한 그레이의 해부학을 읽고서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시 초반에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면 그의 해부학적 지식이 스며든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바스키아는 우편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하다가 당시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클럽 57과 머드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영화제작자이자 음악가, 큐레이터인 디에코 코르테즈(Diego Cortez)를 만난다. 바스키아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코르테즈는 그의 작품을 다량 구입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많은 예술가들을 소개해 주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캔버스를 자유롭게 살 수 있던 시기를 기준으로 전후가 나뉘는 것 같다. 길에서 낙서를 하던 바스키아의 그래피티적인 성향은 캔버스로 옮겨가면서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는 바스키아만의 작품들이 연달아 나오게 되었다.
바스키아는 회계사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현대미술관과 같은 전통적인 장소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하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은 어찌보면 스타가 되기를 꿈꾸고 스타가 된 과정을 동경했던 그의 말에서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바스키아는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뉴욕의 스타로 떠올랐고, 당대의 유명인사인 앤디 워홀, 마돈나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뉴욕은 화려한 도시이자 참으로 고독한 곳이다.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발버둥치는 중산층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머릿속엔 숫자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뉴욕에서 가난한 화가들도 최고의 미술사가 되어 온갖 향락과 사치를 누리며 예술가로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길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다가 가난하게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세이모(SAMO)는 흔해 낡은 것을 뜻하고, 바스키아는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SAMO를 결성하고 뉴욕 거리에 그래피티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예술관을 알리기 시작했다.
바스키아는 블루스, 클래식, 디스코, 소울,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력했으며, 3,000장 이상의 앨범을 수집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고 그의 회화 작업에 반영되었다.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통해 추상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비밥(Bebob)' 장르처럼 바스키아의 드로잉도 즉흥적이면서 자유로운 음악 같은 화면을 구성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면 그리고 나서 지워버리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모자이크 형식의 기법도 눈에 띄었고, 여러 문장과 단어들을 나열함으로써 'untitled'의 제목과는 달리 그의 작품이 의미하는 걸 글자를 읽으면서 유추해볼 수 있었다.
팝아트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의 영웅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바스키아 역시도 어릴 때 보고 자랐던 코믹북과 TV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 속에서 상상한 영웅들이 나타난다. 또한 붉은 토끼와 소 같은 다양한 동물들의 그림도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그의 독특한 상상으로 표현된 동물들은 바스키아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임을 느낄 수 있다.
바스키아는 미술이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싫어했다.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음악은 더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_ 마돈나
운만 좋아야 하는게 아니라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바스키아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앤디워홀과 바스키아를 그린 작품. 앤디워홀을 만나고 헤어지자마자 이 작품을 그려서 앤디워홀에게 보여줬다고 하니 바스키아의 표현력과 집중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러니 수천여점의 작품을 남기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뉴욕의 또다른 팝아트 작가인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는 서로가 영감을 주며 경쟁했다고 하는 동시대의 사람이다. 앤디 워홀, 바스키아, 키스 해링의 작품은 또렷하게 다르지만 같은 시대에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세사람은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유명한 팝아트 작품들을 전 세계에 남겼다.
바스키아의 예술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예술성이 그에게 발현되었다.
마돈나와 바스키아의 관계는 꽤나 흥미롭다. 마돈나, 앤디 워홀과의 만남은 바스키아에겐 정말 중요한 존재였다.
"I'm not a real person. I'm a legend."
28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치고 간 바스키아는 그의 말대로 한낱 인간이 아니라 영원만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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